노벨문학상은 특정 작품에 수여되는 퓰리처상이나 부커상과 달리, 한 작가가 평생 이룬 문학적 업적의 깊이와 폭을 인정하여 수여된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 작가 한강이 선정되었을 때, 스웨덴 한림원은 그녀의 작품들을 이렇게 평했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도, 인간 존재의 나약함과 회복력을 시적이면서 단호한 문체로 함께 그려냈다고.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한강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 죽은 이들이 산 자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하는 동안, 학살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살아 있는 이들에게 어떤 힘이 될 수 있을지 깊이 고뇌했다고 말했다.

2025년에 영어판으로 출간된 『작별하지 않는다』는 눈이 내리는 정적 속에서 서사를 시작한다. 눈의 하얀 색채는 무언가를 감추면서도 동시에 진실을 드러낸다. 눈은 부드럽고 고요하지만, 차마 묻히지 못한 사연들의 무게로 가득 차 있다. 소설은 첫 장부터 풍경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증언의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세 여인이 있다. 이들은 제주 4·3 사건의 생존자인 정심과 그 아픔을 대물림한 딸 인선, 그리고 인선의 친구이자 화자인 경하다. 경하는 다친 인선을 대신해 그녀의 앵무새를 돌보러 제주로 향하지만, 도착했을 때 새는 이미 죽어 있다. 표면적으로는 우연한 죽음이지만, 이는 깊은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다. 이는 제주라는 섬이 품고 있는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의 역사로 통하는 상징적인 문이기 때문이다. 한강은 세 여성 인물을 통해 세대를 초월하여 이어지는 슬픔의 연결 고리를 묘사한다. 역사적 상흔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야기가 80년 전 제주에서 발생한 학살 장면으로 넘어갈 때, 소설의 어조는 차분하지만 처절하게 어두워진다. 한강은 단 하나의 과장된 표현도 없이, 오히려 담담한 서술을 통해 참혹함을 극대화한다. 화산재에 묻힌 시신, 동굴에 숨죽인 아이, 불길 뒤 남은 탄초 냄새 등 모든 이미지는 악몽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나 독자의 뇌리에 박힌다. 이러한 묘사는 독자를 놀라게 하려는 의도보다는, 과거에 존재했던 고통스러운 현실을 증언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문장은 절제되어 있고, 구문은 차갑게 정돈되어 있으며, 슬픔이 모든 수식을 벗겨낸 듯하다. 역설적으로, 구절들이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 극도의 절제 때문이다. 한강은 역사를 거대한 구경거리로 소비하지 않고, 독자에게 그 실체를 직시해야 하는 느리고 고통스러운 과제를 안긴다. 그녀는 학살을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하지 않고, 현재 우리 앞에 놓인 도덕적 질문으로 승화시킨다.
그녀에게 ‘작별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감정의 영역을 넘어선 윤리적 태도를 의미한다. 한강의 관점에서 작별은 망각으로 가는 첫걸음이며, 평온은 기억을 저버린 토대 위에 세워지기 마련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침묵 속에서 작별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기억은 윤리적 실천이며, 인간답다는 것은 세상을 떠난 이들과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의 문체는 이러한 윤리적 관점을 그대로 담아낸다. 한강은 눈, 새, 나무 같은 일상의 사물을 감정과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는 도구로 활용한다. 슬픔의 고요함과 기억의 섬세함은 눈으로, 사라지지 않는 생의 불씨는 새로, 상실 속에서도 계속되는 존재의 지속성은 나무로 상징된다. 그녀는 트라우마를 이미지로, 기억을 리듬으로, 애도를 미학적 행위로 변모시킨다.
이전의 작품인 『소년이 온다』가 집단적 비극과 공적 슬픔을 다루었다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시선을 내면으로 돌린다. 비명이 멎은 후의 세상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한강은 기억을 단순한 기록된 자료가 아닌, 살아 숨 쉬는 맥박처럼 묘사한다. 기억은 호흡과도 같으며, 고통 속에서도 망각을 거부하는 의지이다.
작품의 결말에서 눈은 여전히 쌓여 있고, 새는 죽어 있다. 하지만 경하의 내면에서는 그 새가 계속해서 날개를 펼치고 있다. 바로 그 상상 속의 움직임이 삶이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강은 우리가 무엇을 기억할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품을지는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제목 그대로 『작별하지 않는다』는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억과 삶의 지속에 관한 소설이다.
한강이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던진 물음의 해답은 우리의 아주 가까운 역사 속에 있다. 윤석열이 불법 계엄령을 선포하고 야당 의원들을 체포하려 국회를 포위했을 당시,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거리에 나와 국회를 지켜냈다. 비무장 상태의 시민들은 병력의 위협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헌정 질서의 마지막 보루를 지켜냈다. 그 뒤를 이은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인용 판결은 한강의 물음에 대한 생생한 대답이 되었다. 정치인과 법관들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 역시, 계엄령이 선포될 때마다 한국 사회가 어떤 비극으로 치달았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제주 4·3과 1980년 광주의 희생자들은 과거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도록 지금의 우리를 구원했다. 그들의 고통과 희생은 국민의 기억 속에 윤리적 등불로 자리 잡아, 다시금 어둠이 닥칠 때 길을 밝혀주었다.

